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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MBTI: 네 숫자가 가리키는 운명

리처드는 면접장 앞에서 1분을 남기고 자신의 MBTI 검사 결과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ENTJ". 그가 어제까지만 해도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그 네 글자가 지금은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로 다가왔다. 지난 주, 취업 커뮤니티에서 퍼진 소문 때문이었다. "S사는 I 성향만 뽑는다", "P사는 ENFP만 서류 통과시킨다" 같은 말들이 현실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정확히 2분 후에 입장하세요." 면접 도우미의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손바닥에서는 식은땀이 흘렀고, 넥타이는 목을 조이는 올가미처럼 느껴졌다. 리처드는 휴대폰을 꺼내 급하게 MBTI 테스트 페이지를 다시 열었다. '내가 좀 더 내향적이라고 답변하면... 30초면 충분해.' 그는 이성적인 판단력으로 유명한 ENTJ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다.

면접실 안으로 들어서자, 테이블 위에는 지원자용 태블릿이 한 대 놓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리처드 씨. 오늘 마지막 절차는 간단합니다. 화면에 나타난 질문에 직감적으로 답해주세요." 면접관이 말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MBTI 테스트였다. 리처드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 회사가 정말로 MBTI로 사람을 걸러낸다는 소문이 사실이라고 확신했다.

손가락이 떨리며 질문마다 망설였다. '모임에서 나는 주로: A. 많은 사람과 대화한다 B. 소수와 깊은 대화를 나눈다' 리처드는 B를 선택했다. 그는 원래의 자신이 아닌, 회사가 원할 것 같은 사람으로 답변을 채워나갔다. 마지막 질문까지 끝내고 제출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ISFJ'가 떴다. 그의 원래 성향과는 정반대였다.

"흥미롭군요." 면접관이 태블릿을 건네받으며 말했다. "리처드 씨, 지난주에 제출한 자기소개서와 오늘의 테스트 결과가 상당히 다르네요. 사실 저희는 특정 MBTI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을 얼마나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침묵이 흘렀다. 리처드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회사는 로봇이 아닌 사람을 채용합니다. 리처드 씨의 원래 MBTI가 무엇인지 알려주시겠어요?" 면접관의 표정은 엄격했지만, 눈빛에는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리처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ENTJ입니다. 제가... 소문을 듣고 결과를 조작하려 했습니다."

"정직한 고백이군요." 면접관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진짜 면접을 시작할까요? 리처드 씨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어떻게 팀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네 글자가 아닌, 당신이라는 사람 전체를 보고 싶습니다."

퇴근길, 리처드는 합격 통지를 받은 이메일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취업의 문은 네 글자로 정의된 성격 유형이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용기를 가진 사람에게 열린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