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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남편

화장품 남편: 애프터쉐이브 로션에 담긴 진실

그가 사망한 날, 화장대 위에 정렬된 화장품들이 평소와 다른 순서로 배열되어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경찰에게 말하지 않았다.

남편은 내 화장품을 건드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우리 사이에 있었다. 결혼 십오 년 차,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평화로운 공존의 비결이었다. 내 화장대는 성역과도 같았다.

그날 아침, 내가 출근하고 남편은 휴가였다. 저녁에 돌아왔을 때 현관문 앞에 경찰차가 서 있었다. 심장마비. 갑작스러운 죽음.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장례를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오려 할 때, 비로소 화장대의 이상함을 발견했다.

파운데이션과 컨실러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립스틱들은 색상별로 정리되어 있었고, 평소 내가 절대 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내가 쓰지 않는 브랜드의 새 립스틱이 중앙에 놓여 있었다. 선물일까? 그의 마지막 메시지였을까?

나는 유서를 찾듯 화장품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했다. 파운데이션 밑바닥에 붙어있는 작은 USB. 내 손이 떨렸다.

그의 컴퓨터에 USB를 꽂았다. 한 개의 동영상 파일. 재생 버튼을 누르자 남편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는 지친 표정이었다.

"여보,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지? 네 화장품에 손을 대서 미안해." 그가 웃었다. "나 요즘 누군가 우리 집을 감시하는 것 같아. 내가 알아낸 것들이... 위험해. 이 USB를 박정우에게 전해줘. 그가 알 거야 어떻게 해야 할지."

박정우. 남편의 대학 동창이자 검사.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라는 사망 원인이 의심스럽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화장을 지우는 클렌징 오일을 바르는데, 손가락에 닿은 그의 애프터쉐이브 로션 향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모든 화장품을 쓸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매일 아침 화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그곳이 가장 안전한 메시지 전달 장소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꼼꼼하게 화장품을 정리하는지, 얼마나 루틴에 충실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처럼 화장을 했다. 파운데이션, 컨실러, 아이섀도. 마지막으로 남편이 놓아둔 새 립스틱을 열어 입술에 바르며 결심했다. 오늘, 나는 박정우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이 화장품들처럼, 남편의 진실도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